[더굳뉴스] 소강석 목사와 참전용사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새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의심에서 깨어난 무거운 믿음이여. 오오 여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의심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믿음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새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도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믿음이여.
노무현은 확실한 진보다. 그러나 정책은 다르다. 정책학은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본다. 공산주의가 왜 망했을까. 인간의 욕망과 어긋났기 때문이다. 소강석이 내려보며 악수한 문재인이 USB를 넘겨준 김정은과 달리 북유럽 국가들이 시장 원리를 존중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유지하면서 최저임금제를 하지 않는 것도 인간 욕망을 억누르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국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12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태평양 지역 방어선은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을 거쳐 오키나와로 연장되는 선에서 필리핀으로 연결된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태평양의 여타 지역은 외세의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보장해줄 수 없을 것이다. 공격이 있으면 초기 대응은 공격받은 국민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한 구절이 한반도에 ‘북한의 남침’을 불러온 초대장처럼 인식됐다. 6·25 전쟁은 애치슨 강연이 나온 뒤 5개월여 지난 뒤 터졌다. 하지만 연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격받은 국가가 저항한) 다음에는 유엔헌장에 따라 문명화된 세계 전체의 약속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유엔이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애치슨은 “유엔은 지금까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조직으로 ‘약한 갈대’가 아니다”고 했다. 6·25 전쟁 발발 후 유엔의 신속한 움직임은 애치슨의 말처럼 유엔이 ‘약한 갈대’가 아님을 증명했다. 애치슨은 아시아를 태평양의 남과 북으로 나누고 북쪽에 미국의 책임과 기회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극동군사령부가 군정을 실시하고 있던 일본은 ‘미국이 직접 책임을 지며 직접적인 행동의 기회를 지닌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도는 낮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국은 미국이 군사점령을 끝내고 세계가 인정하는 주권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책임은 더 직접적이고 기회는 더 분명하다’라고 했다.
애치슨 연설에서 ‘책임’을 강조한 뒷부분이 알려졌을 때 대한민국을 건국한 크리스천 이승만 대통령은 ‘감사 전문’을 보냈다. 한국이 ‘애치슨 라인’에 포함된 필리핀보다 더 중요시됐다는 한국 언론 보도도 있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북경대학교,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초빙교수 역임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도진순, ‘1950년 1월 애치슨의 프레스클럽 연설과 하나의 전쟁 논리’, 『한국사연구』, vol. 119쪽)
그만큼 애치슨 연설에서 한국은 방어선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어도 방어 의지는 작지 않았다. 애치슨은 연설에서 대만 국민당과 장제스(蔣介石)에 대해 ‘중공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으나 국민의 지지 철회로 군대가 녹아내렸고 섬의 난민이 되었다’라고 한 것과 대조된다.
소련은 애치슨 라인을 어떻게 보았을까. 스탈린은 ‘조선반도 같은 작은 전쟁에 개입할 리는 없을 것’이라는 북한의 말을 확인하는 것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 (선즈화, 334쪽). 소련은 북한의 남침을 국가 간 침략이라기보다 중공에서 막 끝난 국공내전처럼 ‘끝나지 않은 내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이 승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전쟁에서도 판세가 결정되면 이를 뒤집으면서까지 희생을 치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애치슨 연설을 이해했을 수 있다. (핼버스탬, 84쪽)
김일성은 좀 달랐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찾아가 남침에서 속전속결 승리를 장담하며 지원을 요청할 때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이유로 남한이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된 것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승만은 방어선에서 제외돼 김일성의 남침을 불러왔다고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1950년 5월 20일 맥아더는 참모장 회의에서 “중공의 대만 점령은 소련의 점령과 같다. 이 경우 미국의 태평양 주변 방어선은 무너진다. 대만은 대소 전략의 이상적 위치에 있는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말했다.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서 대만의 중요성은 처음에는 중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소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1950년 2월 이승만 대통령이 도쿄에 맥아더를 만나러 갔을 때 한 말이다.
“불행한 과거사 싸움 대신 일본이 우리와 같이 위기를 깨닫고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협조할 수 있다면 양국 사이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도진순, 199쪽)
한국을 건국하고 지킨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전 극동방어선의 주요 거점에 있는 일본과 한국을 연결시키고 미국을 설득하고자 분투했다. 사실 8·15 광복절뿐만 아니라 6.25 전쟁 73주년 상기 및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일에도 우리는 믿음의 위인 이승만 대통령을 기려야 할 것이다.
2023년 6월 18일 오후 4시 새에덴교회 본당 프라미스홀에서 1962년 2월 22일생 61세의 소강석 목사가 그의 출생 12년 전 스탈린과 김일성의 획책으로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 73주년 상기 및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참전용사 초청 보은과 전몰장병 추모예배를 주관했다.
소강석 목사는 행사 순서지를 통한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처요 고난과 눈물의 역사였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폐허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절한 고난과 시련의 땅에도 다시 꽃은 피었고 희망의 봄은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6.25 전쟁의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 우리 민족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주신 참전용사 여러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참전용사 여러분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전하겠습니다. 그래서 새에덴교회는 한국교회 최초로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여 17년째 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전용사 참전행사가 한미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랑과 평화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6명의 외국 참전용사, 16명의 전사자 실종자 가족들, 100여 명의 국내 참전용사와 교인들이 참석했다. 참전용사들의 고령화로 인해 국내 초청행사는 그만하고 내년부터는 미국 현지를 방문해 보은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만찬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1:23-26을 봉독하고 믿음의 대인 소강석 목사는 '잊지 않는 거장'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교했다.
"참전용사 모두의 희생으로 우리는 오늘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하는 목적은 첫째, 지난 날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보은 정신을 갖고 사회적 환원을 위해서입니다. 새에덴교회가 보훈 정신을 함양하는 일에 쓰임 받아서 감사합니다. 셋째, 한미관계를 증진키 위한 민간외교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고난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고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외 참전용사, 전사자, 국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실의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부 수장 김진표 의원이 격려사를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기념사를 했다. 새에덴교회 장로회장 서광수 장로가 광고했다. 이어서 제106회 총회장 울산 큰바위배광식 목사가 영감어린 축도를 했다.
여행은 이동하는 시공간을 자기화하는 체험이다. 나 아닌 타자, 생소한 외부의 현상과 세계를 소화하는 동안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내 존재 바깥의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밭고랑과도 같은 기억을 남긴다. 기억과 경험 그 자체가 삶의 일부분이 된다. 글은 천천히 완성되고 오래 남지만 말은 빠르게 휘발하고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에 의해 금세 지워져 버린다. 감정은 빠르고 논리는 느리다. 진품의 진가는 숙성과 연륜에 의해 드러난다. 믿음의 대인 소강석 목사의 시간은 고요와 성찰 속의 시간 속에서 더 크게 익는다.
성경은 말씀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4-6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