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살아 있음에는 ‘그냥’이 없다. ‘그냥’ 살라치면 ‘그냥’ 사라지기 때문이다.


죽음은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이가 남기고 가는 깨달음의 선물이다. 우리는 후회할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죽는 순간, 그때 용기를 내서 사랑하거나 맞서 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아무리 어렵게 보이는 무엇이었건 간에.


가을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 수확의 날들 속에서 ‘문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날들을 세어보자. 그러면 ‘성령과 우리는’ 햇빛에 여문 밤송이가 때마침 지나가는 바람의 도움으로 툭 떨어지듯.’ 저 멀리서 샬롬의 축복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제107회 제108회 총회장 이·취임 감사예배가 2023년 9월 20일(수) 저녁 7시 30분 새로남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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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새로남교회 성가대 장엄한 아멘송으로 열렸다. 서기 김한욱 목사가 사도행전 2:25-28 다윗의 성시를 낭독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회중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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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후 새로남교회 연합성가대가 독창 · 중창 · 합창과 악기 반주가 동반되는 장엄한 칸타타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로 예배당을 6분 동안 은혜와 감동으로 채웠다. 감격한 회중은 우렁찬 박수와 아멘으로 화답했다. 조용하고 티나지 않는 회록서기 전승덕 목사가 강단에 섰다. 

 

"오늘밤 주신 말씀은 사도행전 15장 28절 29절입니다. 말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회중 아멘)


사회자 김한욱 목사가 설교자를 소개했다.


"내수동교회 원로목사님이시고요. 아마 우리 총회장님의 영적 멘토인 줄 알고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실 때 모두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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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에서 설교학과 헬라어를 강의했던 96세의 박희천 목사가 부축을 받고 강단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는 디모데후서 3장 17절의 말씀처럼 목사는 성경으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른 길로 돌아오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평생 실천한 목회자였다. 이제 2023년 9월 20일(수) 저녁 7시 30분 96세 그가 새로남교회에서 휠체어에 앉아 명징한 얼굴 모습을 산마루에 걸린 보름달처럼 강단에 드러냈다. 회중이 뜨거운 박수를 쳤다. 소리가 잦아들자 그가 온 회중의 시선과 귀를 사로잡고 잔잔히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돼서 감사합니다. (회중 아멘) 예루살렘 공회는 주후 50년에 모였는데 예루살렘 공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성령과 우리는' (좀 있다 다시)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서북 어투로) 무슨 말씀입니까. 예루살렘 공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성령님은 제쳐놓고 인간들끼리만 모여서 회의를 한 것이 아닙니다. 거! 묘하지요. 예루살렘 공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사람들끼리만 모인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성령님을 같이 모시고 회의를 했습니다. (회중 큰 아멘) '성령과 우리는' 거 참 묘한 모임이지요. 보통 회의에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예루살렘 공회는 사람들끼리만 모인 것이 아니라 그곳에 성령님께서 함께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말씀이 나오는 겁니다. 섭섭하게도 이사야 시대는 '성령과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30장 1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지 않았다. 


얼마나 섭섭합니까. 이사야 시대의 회의는 그들이 맹약을 맺어도 하나님의 성령은 제쳐놓고 뭐요 그들이 어떤 결정을 지어도 하나님의 성령을 제쳐놓고 자기들끼리만 모였던 겁니다. 이사야 시대의 모임은 ‘성령과 우리는’이 아니었습니다. 섭섭하게도 이사야 시대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선지자 호세야 시대 때도 그랬더군요. 호세아 8장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는 모르는 바이다’


호세아 시대의 사람들은 ‘성령과 우리는’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일 다 잘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한 가지 크게 실수한 게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기브온 족속이 있어요. 여호수아에게 점령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족속이 꾀를 부렸습니다. 어느 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곰팡이 난 음식을 가지고 여호수아 앞에 왔습니다. ‘여호수아여 우리는 당신의 점령 지역 안에 있는 족속이 아닙니다. 하도 길이 멀어서 고향을 떠날 때는 깨끗한 옷을 입었고 따끈따끈한 음식을 가지고 떠났는데 오는 중에 옷이 다 떨어지고 음식이 다 곰팡이 났습니다. 우리는 당신 점령 지역 안에 있지 않으니 우리하고 화목합시다.’ 여호수아서 9장 14절에 보니 여호수아가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맹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중요한 계약을 하면서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덜컥 맹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실수입니다. ‘성령과 우리는’이 아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후에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96세의 박희천 목사가 생각을 더듬느라 2분 20초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의 중간에 ‘성령과 우리는’의 의미를 말없이 되새기며 회중의 박수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회중 박수) (침묵이 끝나고) 그러면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우리가 회의를 할 때 사람들끼리만 모이지 아니하고 ‘성령과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회의를 할 때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사도행전 15장 30절에 그 결정을 듣고 모든 사람이 ‘기뻐하더라’ 했습니다. (회중 아멘) 야 참 예루살렘 사람들이 회의를 잘 했구나.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노.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듣고 모든 사람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회중 아멘) 


둘째로 사도행전 16장 5절에 보면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라 했습니다. ‘성령과 우리’가 결정을 하니까 여러 교회가 믿음이 굳어졌다고 했습니다. (회중 아멘) 그런데 어느 한 교회만 믿음이 굳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 ‘성령과 우리’가 결정한 그 소식을 들은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고 했어요. (회중 아멘) 또 그 다음에 ‘날마다 수가 더하더라’ 했습니다. 여러 교회가 날마다 수가 더하더라 했습니다. 수가 확 늘어났다가 그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어제도 늘어나고 (회중 아멘) 오늘도 늘어나고 (회중 아멘) 내일도 늘어나고 (회중 아멘) 모레도 늘어나고 날마다 늘어납니다. (회중 아멘) 예루살렘 공회가 사람들끼리만 모이지 아니하고 ‘성령과 우리가’ 같이 모일 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기뻐하였고 한 교회가 아니라 여러 교회 믿음이 굳어지고 어제, 오늘, 내일, 날마다 수가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회중 아멘) 오늘 이 자리가 총회가 모인 자리인 줄 아는데 우리 교단의 총회가 모일 때마다 미안합니다.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총회가 되지 않고 ‘성령과 우리는’ 이러한 총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과 우리가’ 모여서 결의하고 그 결의한 결의가 전국 교회 위에 공포될 때 야! 이번 총회가 잘 결의했구나! 하는 소식을 듣는 모든 교회가 기뻐하고 (회중 아멘) 교회가 이 결의들을 행할 때 많은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회중 큰 아멘) 또 이 소식을 들을 때에 날마다 수가 더하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또 이 총회 장소가 오정호 목사님 시무하시는 새로남교회인데 우리 오정호 목사님 목회하실 때 미안합니다. 오 목사님 혼자 목회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목사님’ 목회해서 (회중 아멘) 그 결과 새로남교회 모든 교인들이 기뻐하고 (회중 아멘) 그 결과 새로남교회 교인들이 믿음이 굳어지고 (회중 큰 아멘) 날마다 수가 더하는 (회중 큰 아멘)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중 큰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옛날에 예루살렘 교회가 자기네들끼리만 모인 것이 아니고 성령님을 모시고 회의할 때 그 결과를 듣고 많은 사람이 기뻐했고 (회중 아멘) 모든 교회의 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해진 것 같이 교인과 오 목사가 성령님과 동행해서 역사함으로 (회중 아멘) 온 교회가 기뻐하고 교회의 믿음이 굳어지고 (회중 아멘) 수가 날마다 더해지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날 수 있게 하옵소서. (회중 큰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회중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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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의 큰 박수 속에 박희천 목사 부축을 받으며 강단을 내려왔다. 총회 108년 되는 삼일 밤 예배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한 예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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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박희천 목사의 설교 ‘성령과 우리는’이 전하는 은혜와 축복의 결과 제108회 총회 보고서는 이런 사실을 전했다.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샬롬 부흥' 전도 운동에 힘입어 성도 숫자는 전년 대비 59,151명 증가한 2,351,896명(2021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전인 2019년 2,556,182명에서 2년 사이 26만여 명이 감소하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성장을 기록했다.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의 교인 증감률은 2019년 -6.8%에서 이듬해 -3.8%로 줄어든 데 이어 이번에 +2.6%로 다시 증가세로 반전했다. 특별히 5년 연속 교인이 줄고 있던 흐름을 바꾼 것이 개혁적인 은혜와 샬롬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어려움을 겪던 미자립 개척교회들이 문을 닫으며 감소세를 보이던 교회도 1년 사이 11,262개에서 제107회 총회(총회장 권순웅)에서 11,920개로 658개 증가하며 역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제108회 총회(총회장 오정호)는 보고했다. ‘성령과 우리’가 샬롬부흥운동본부(본부장 김진하 목사) 임역원의 수고에 함께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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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아이큐는 대단하지 않다. 가장 똑똑하다는 동물은 돌고래와 문어다. 문어의 아이큐는 8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아이큐가 160이 넘지 않는다면 문어보다 2배 이상 똑똑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인류가 어떻게 동물들은 하지 못하는 인공위성, 유전공학,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간의 뇌는 병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케이블도 없이 우리의 뇌는 병렬로 연결될 수 있었을까? ‘언어’를 통해서다. 대화를 하면 서로의 뇌가 연결되는 효과가 생긴다. 그런데 언어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어야만 연결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문자’를 발명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 나는 9,000㎞ 떨어진 그리스에 2,500년 전에 살았던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과 뇌가 연결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12년 정규교육을 받고 졸업하면 인류 문명사 5,000년 동안 가장 똑똑한 사람 수천 명의 뇌와 병렬로 연결되는 효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연결로 똑똑해진다. 그렇듯 말씀을 믿고 전하는 우리는 어떻게 지혜로워지고 믿음이 굳건해질 수 있을까.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결될 때 가능하다.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예증할 수 있겠는가. 아마 삼위일체에 대해 인간이 들 수 있는 적절한 실례는 빛, 열, 공기일 것이다. 당신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본다면 바로 거기에 빛과 열과 공기가 각기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빛이 있다. 그 이유는 당신은 빛을 통하여 자신의 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일지라도 그곳에는 여전히 빛이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의 머리와 손 사이에는 열이 존재한다. 그 열은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변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손을 휘저으면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요점은 빛과 열과 바람 이 세 가지가 각각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각기 자신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을 각각 분리해서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 가운데 다른 두 가지가 없이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세 가지이지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이 실례가 지닌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이 이 세 요소를 하나님과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빛: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5


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 12:29


바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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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천 목사의 총회를 위한 ‘성령과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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